안녕, 한남 2023
Exhibition Details
안녕, 한남 2023
우리가 다시 사랑하려면
Oct 6 - Oct 28, 2023
아쉬LAB high
(서울특별시 용산구 대사관로6가길 28-12)
13:00 - 18:00 월, 화 휴관
Artists
김남훈, 김미옥, 김시은, 김주암(그린그라피제이), 김현희, 박새로미, 심희정, 양세진, 이수지, 조세진, 지영, 최우, 최인호, 허소, 홍성용, 황아일, Dion Bierdrager, Sakubo
주최 아쉬LAB
기획·운영 오은교, 땡땡콜렉티브
글 김강리, 최수연
디자인 김강리
기획의도
지금 / 여기에는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상실을 마주할 여건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사라진 존재를 떠올리며 아파할 겨를도 없이, 바로 현실의 요구와 명령을 따라야 했다. 그러나 미처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은 슬픔과 원망의 교차로에서 방황하며, 자기 자신을 공격하거나 포기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 괴로움은 심리적인 동시에 정치적 문제이다. 이들에게는 사라진 존재에 얽힌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고, 사회는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픈 기억이 신체로 전환되는 증상을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지금 / 여기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애도가 상실을 전제한다면, 상실의 경험은 사랑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본 간담회는 정신적 외상을 외재화하는 기념비이자, 지금 / 여기에서 슬퍼하는 우리에게는 사랑할 권리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실을 알리는 선언문이기도 하다. 죽음이 도처에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다.
1부에서는 1:1 대화를 통해 자신의 기억 속 대상을 말로 묘사함으로써 대상을 ‘나’로부터 떼어 놓고, 상실을 마주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시공간을 조성한다. 여기에서 슬픔을 느낄 시간도, 아픔을 토로할 공간도 없었던 이들과 함께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하며 사라져 가는 ‘나’의 일부를 되돌아본다. 이로써 우리는 상실을 억지로 껴안은 이들을 불러와, 상실을 기꺼이 맞이하기 위한 조건을 검토하고자 한다.
소리 내어 함께 울던 우리는 2부의 라운드테이블을 경험하며 ‘나’를 떠나간(혹은 떠나갈) 그/것을 향한 감정이 이루고 있는 복잡한 지층을 파헤쳐 본다. 우리의 임무는 켜켜이 쌓인 미움을 걷어 내고 반짝임을 발굴하는 것이다. 증오와 원망이 뒤덮고 있던 기쁨과 환희가 공기를 만나 호흡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되풀이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추진배경
이태원역과 한남역 사이 구역에는 ‘뉴타운 급매물’, ‘급매물 다량 확보’, ‘재개발 소액 투자 전문’ 같은 글귀가 넘친다. 부동산 옆 편의점, 다시 부동산 그리고 통닭집, 또 부동산, 그 사이로는 좁은 골목이 뻗어 있다. 어느 골목으로 가든 낡고 허름한 집을 만난다. 급매물, 소액 투자는 이 집들의 미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은 한남 뉴타운으로 개발될, 구역 이름 앞에 숫자가 붙은 한남·보광동 땅 가운데 가장 넓다. ‘역대 최대 재개발’, 구태여 더 강조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이라고 한다. 그런데 화려한 수식과 상관없이, 어쩌면 그 수식 탓에 오늘의 풍경은 허름하다. 벽에는 균열이 예사고, 유리는 깨지고, 문은 녹슬었다. 한남 뉴타운 중에서도 한남3구역이 시작되는 이 지점,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무성한데 현재에는 무심하다.
한남동 뉴타운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게 2003년부터이니, 이런 채로 20년 가까이 지났다. 임대료가 저렴한 탓에 한 집 건너 한 집에 예술가의 작업실이 생겼고, 이곳을 스쳐 지나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십 년째 이곳에 정을 붙이고 사는 예술가도 있다. 그리고 아쉬 LAB은 그런 예술가들을 그러모으고,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이주와 철거를 기다리며 매년 《안녕, 한남》을 개최해 왔다. 이윽고 2023년 10월부터 한남3구역 이주가 실질적으로 시작되면서 《2023 안녕, 한남》은 마지막 ‘안녕, 한남’이 되었다.
그러나 한남과 헤어짐의 “안녕”을 나누는 자리에 동석한 것은 상실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아쉬 LAB를 매개로 연결된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기쁨의 순간들이 있다. 이를테면, 지난 5월 ‘여기서 저기로’는 바라카 작은 도서관과 협력하여 이주민 아동들과 함께 연극 수업을 진행하고 《월간 연극》을 선보였다. 열연을 펼치는 아이들과 공연장 내에 퍼지는 웃음소리. 우리가 한남 제3구역에서 얻은 것은 상실의 아픔만이 아니다. 기쁨과 환희 또한 한남 제3구역으로부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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